[일간보사 31주년 창간특집]

형사처벌 1위 K­의료 ‘공안의료’ 안착
영국, 6년간 의사 과실치사 형사처벌 4명­한국은 67명
‘의료 형사범죄화’ 방어진료 조장…면허규제법 신중기해야

-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지난 2000년 정부의 강제 의약분업 시행을 계기로 우리나라 의료계 역사상 최초로 의사들의 본격적인 집단행동이 진료실 밖으로 가열되어 표출되었다. 그 후 의료계와 정부, 정치권과의 긴장감과 상호 불신의 관계는 지금도 악화일로 속에 진행 중에 있다. 선거에 압승한 다수당의 힘과 정부와 청와대의 논의를 근거로 국민적 합의를 이루었다고 우기는 졸속 행정은 2021년에 와서도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한 치졸한 보복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추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2000년 의사파업 이후에 당시의 정부는 지금의 민주화 세력에 의하여 의사를 강제징집할 수 있는 독재주의적인 업무개시 행정명령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20년 전의 역사는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는 셈인데, 작금에 추진하는 ‘면허규제법’은 단순한 파업의 방지가 아닌 의사 개개인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를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다.

◇거꾸로 내달리는 정치 역량 의사 집단행동에 우리정부 의사면허 강력 통제수단 악용= 국제적으로 사회적 신뢰도를 평가해 보면 의사는 최상위권이다. 우리나라도 의사 개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도 상위권이다. 반면에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최하위권이고, 변호사나 판사는 중위권에 속한다. 최근의 보고되는 자료에서 우리사회에서 판사도 낮은 신뢰도를 받게 되었다. 이런 직업군의 특성의 배경에서 최하위 신뢰도를 갖고 있는 정치집단이 신뢰도 상위집단의 도덕성을 들먹이며 면허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집단이 살인, 강간 등 중범죄 의사를 비호하는 특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면허규제에 대한 새로운 법안시도에 대한 의사단체의 반대 목소리에 당과 정부를 대표하는 최고 리더는 어이없다는 매우 단세포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회적 모범집단이 범죄자를 옹호한다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인데, 이것이야 말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도대체 전 세계 어느 나라 의사집단이 살인범이나 강간범을 옹호한다는 말인가?

일부 언론에서는 의료계가 마치 살인범과 강간범들이 우글거리는 집단으로 묘사하는데 이들을 자유롭게 방임하거나 풀어준 것은 의사협회가 아니다. 그런 권한이 의협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선진 사회에서 다뤄지고 있는 ‘자율징계권’ 역시 정부가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전문가단체에 위임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들의 집단적 행동에 의한 권력행사는 더욱 아니다. 다만 이런 일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가 현재 하고 있는 행정처분에 관한 일련의 절차가 매우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형사처벌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 의사는 반드시 면허기구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다. 신고에 따라 면허기구는 사안 별로 심사를 한다. 해당 사안이 향후 환자진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 들 경우 면허에 단서조항이 부과되거나 면허 정지를 시킬 수 있다.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무조건 자동적으로 면허를 취소시키지는 않는다. 대개 살인이나 강간 등 중범죄자가 면허를 다시 받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성과 합목적성에 부합한 면허관리 VS 감정적 길들이기 차원의 형사처벌 압박=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사고에 대한 문제는 거의 통상적으로 민사와 형사고발을 당하고 있다. 즉, ‘의료의 형사범죄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나라가 되었다. 의료의 결과로 예기치 못한 장애가 발생하거나 사망을 초래했을 때 우리사회는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풍토가 된 것이다. 설령,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정되어 과실이 없다고 판단되어도 배상이나 이로 인한 책임은 의사가 떠안아야하는 매우 정의롭고도(?) 희한한 나라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세계에서 가장 환자 중심적이면서 가장 착한 의사 집단이어야 하는 단순한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법조문화 덕분에 우리나라는 전과자 의사를 양산할 수 있어 의료활동에 대한 매우 실질적이고 상존하는 위협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 영국은 소아환자가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큰 사회문제화 하였다. 그리고 의료로 인한 형사처벌에 대한 논의가 다시 영국사회의 거대 화두로 등장하였다. 조사결과 2013년에서 2018년 사이 6년간 총 4명의 의사가 영국 전체에서 과실치사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문제는 4명이라는 매우 드문 사례임에도 매년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고발 건으로 경찰에 의한 조사가 증가하는데 이에 대한 영국의사들의 반응은 매우 민감하고 첨예하다. 형사조사 자체가 의료인에게 주는 압박감과 위협감 그리고 공포감이 정상적인 의료를 방해하고 점차 환자가 최우선이 아닌 의사 자신의 생존을 위한 방어적인 의료로 변질시킨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과실치사상으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실제로는 거의 없어 사례를 찾기 힘들다. 2019년 대한의사협회 학술대회에 참가하였던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면허기구 수장과 세계면허기구연합회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기자들 앞에서 “북미에서는 의료의 결과가 아무리 나쁘더라고 의사를 대상으로 형사처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두 번이나 확인을 하여 주었다.

◇영국 6건 대한민국 670건, 민주화운동 모태 정권 ‘형사처벌 공화국’ 통계로 입증= 6년간 영국이 과실치사로 4명의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은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과실치사상으로 무려 ‘670명’의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미국의 영향이 아닌 대륙법의 영향을 받아 강력한 처벌을 한다는 일부 법조인의 주장도 결국 허구임이 밝혀진 것이다. 독일에서 의료의 형사 처벌건수는 1년에 1명 미만이다. 영·미 의료법 전문가들은 프랑스가 엄격하다는 비유를 자주하는데 알고 보면 연간 12~13명의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은 통계자료가 있으나 그중 과실치사상은 절반이 약간 되지 않는다. 의료로 형사처벌을 받는 의사가 연간 6~7명이라는 사실은 연간 100명이 넘는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의사 수도 우리의 두 배인 20만명이 넘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형사처벌 건수 자체가 가히 살인적 수준이다. 이런 사실은 이미 우리나라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은 국제지수 1위로 K의료는 결국 공안(公安)의료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세계 최고의 의사 형사처벌국가임에도 법의 본래의 기능을 망각한 채 엉뚱하게 법으로 의사의 도덕성을 함양시키거나 의료의 질을 상승시키려는 무지한 초보 입법인들이 우리나라 의료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입법을 추진하는 사회적 신뢰도 최하위 집단도 과연 법으로 도덕성이 상승될 수 있을까?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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