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19>

[의학신문·일간보사]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버나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에 달린 부제목이다. 미덕에 어긋날수록 사회에 이롭고 도움이 된다니...... 흠칫 당혹스러운 혼돈을 누르고, 일단 책 속의 몇 구절을 빌린다.

“미덕은 아첨이 뽐내는 마음에서 얻은 정치적 자손이다.” “나쁜 환경에서 사회가 행복해지고 사람들이 편안해지려면, 반드시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무식할 뿐 아니라 가난해야 한다.” “가난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을 덜어주는 것은 속 깊은 일이지만 가난을 없애주는 것은 바보짓이다.” “원래 가진 버릇을 고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환경이나 재산이 달라질 때이다.” “개인의 악덕은 솜씨 좋은 정치인이 잘 다룬다면, 사회의 이득이 될 수 있다.” -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버나드 맨더빌, 최윤재 역]

의사에 관한 대목도 본다. “의사는 명예와 돈을 힘없는 환자 건강이나 제 재주보다 값지게 여겼으니......” 맨더빌의 벌집에도 “의사가 살고 있긴 했지만, 아픈 놈들이 생기면 의사 대신 벌집 곳곳에 널리 퍼져 사는 솜씨 좋은 벌들이 나서서 처방을 내려주니 굳이 멀리까지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솜씨 좋은 벌들은 쓸데없는 말싸움을 하지 않고 환자가 괴로움을 벗게 애쓰면서, 속임수 쓰는 나라에서 기른 약재는 버리고, 저들이 손수 기른 것을 썼다.

버나드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 1670~1733)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증조부, 조부, 아버지가 의사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네덜란드 레이든(Leyden) 대학에서 의학과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영국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일하면서 평생 많은 작품과 에세이를 출판했다. 대부분 가혹한 정치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다. 책으로 발간되기 전에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1705년)이란 제목의 풍자시로 발표되었다. 점차 주석을 달고 생각을 보태어 이십사 년 뒤에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1729년)으로 재탄생시켰다.

영국사회를 벌집으로 그린 ‘영국 벌집(The British Beehive)’(조지 크뤽생크 그림). 맨 위에 여왕이 산다. 동그라미는 맨더빌 초상.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에 ‘이 벌통은 악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전체 질량은 천국.’이라 썼다.

책은 개인의 악덕이 어떻게 산업, 고용 및 경제 번영과 같은 공익을 가져오는지를 담았다. 사람들은 사회 경제의 번영을 위해 악을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맨더빌을 터무니없는 도덕적 방탕자로 여겼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맨데빌(Man Devil)’이라 비틀어 저주까지 했다. 큰 오해였다.

사회가 악덕으로 보는 방탕, 사치, 명예욕, 뽐내는 마음 등은 잘 관리하면 자비, 연민, 겸손, 검약 등의 미덕보다 사회발전에 더 도움을 준다는 점을 맨더빌은 깨닫고 있었다. 그가 제시했던 한 예를 본다. ‘뽐내는 마음이 사라지면 패션 산업이 없다. 동료들에게 멋진 인상을 줄 새 옷을 살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백 개의 기업이 파산하고, 대량 실업이 촉발되고, 산업이 붕괴할 위험에 빠져, 경제와 군사 안보력이 모두 황폐해질 것이다.’ 이처럼 맨더빌은 인간의 본성과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고스란히 인정했던 인물이다.

『꿀벌의 우화』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영향을 준 책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교수 사이먼 패튼은 “맨더빌이 문제를 냈고, 애덤 스미스는 그 문제를 풀려고 철학을 공부하다 경제학자가 되었다.”고 묘사했다.

이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근시안적 지혜가 우리에게서 행복을 앗아갈 수 있다. 중단해라.”고 도발했던 맨더빌이 의사였음을 새삼 상기한다.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내적 충동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본디 모습대로 드러내기 위해 의사답게 사회를 진단하였다.”는 맨더빌 연구자의 말을 새김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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