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15>

[의학신문·일간보사]

“태양은 그의 의로운 분노 때문에 창백해졌다/그리고 우리의 행로에 독을 돋구었다./그리고 이 분노를 자초한 그는/온몸에 통증, 저주의 맹렬한 통증./궤양과 극심한 고통으로,/더 잠을 잘 수 없었다./모든 관절이 빠져 흩어지고 살은 에이듯 괴로워,/이렇게 양치기는 도리깨질을 당하여 스러져 갔다./그리고 이 질병을 그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른다/시필리스,/우리 도시의 벽을 뚫고/왕조차도 피할 수 없는 그러한 황폐와 그러한 파멸을 가져오는”

- (프라카스토로의 시 『매독 또는 프랑스병』 일부 <출전: 의학 속 문학. 매독(梅毒)-양치기 시필리스/유담, 《문학청춘》>)

프라카스토로와 서사시집 『매독 또는 프랑스병(Syphilis sive morbus Gallicus)』의 첫 쪽. 프라카스토로의 라틴어 이름은 히에로니무스 프라카스토리우스(Hieronymus Fracastorius).

시필리스는 하이티섬에서 알키토우스왕의 양떼를 돌보고 있었다. 평화롭던 섬에 모질고 독한 한발이 덮쳐 모든 곳이 황폐해지고 모든 사람의 심신도 강말라 거칠어졌다. 양치기 시필리스 역시 황폐한 강마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양들은 모두 목말라 죽어갔다. 시필리스는 몹시 분노하며 그동안 사이가 좋았던 태양의 신을 원망하였다.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서 모독하였다. 대신에 알키토우스 왕에겐 정성껏 제사를 드렸다. 섬의 모든 주민도 시필리스의 뜻을 좇아 왕에게 치성을 올리자, 왕은 매우 기뻐하며 자신을 ‘지하세계의 유일하고 능력 있는 신’이라고 선포한다. 태양신은 노했다. 공기, 땅, 강 모든 곳에 전염병을 날쌔게 던져 퍼뜨렸다. 프라카스토로의 시에서 양치기 시필리스는 이 새로운 질병의 첫 번째 희생자, 인류 최초의 시필리스 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프라카스토로는 그 전염병의 이름을 첫 환자인 양치기 시필리스의 이름을 따서 ‘시필리스(Syphilis)’라 지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로나의 개원의사이며 시인, 수학자, 지리학자, 천문학자인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 1476년경~1533년)는 1530년에 서사시 『매독 또는 프랑스병(Syphilis sive morbus Gallicus)』을 발표했다. 시필리스는 시 속의 주인공인 양치기 소년의 이름이다.

베로나에서 태어나 파도바에서 교육을 받고 열아홉 살에 그곳의 대학 교수로 임명될 정도로 우수했던 프라카스토로는 의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상징적 인물이다. 매독이란 병명을 새로 만들어 낸 업적 이외에, 1546년에 집필한 『전염, 전염병 그리고 치료에 관한 세 권의 책(De contagione et contagiosis morbis et eorum curatione libri tres)』에 엄청난 질병을 일으키는 아주 작은 전염의 씨앗[seminaria contagiosum, 병원성 유기체, 즉 세균]의 존재를 암시한 데에서 그의 명성은 더 견고해졌다. 물론 주로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등의 네 가지 체액의 균형이 깨져서 병이 생긴다고 믿고 있던 당시에 전염체의 주장은 엉뚱한 발상으로 취급받았다. 그가 죽고 백 년도 더 지나서야 레벤후크에 의해 미생물 세균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병적 상태가 전염된다는 프라카스토로의 암시는 미생물학계에선 선구자적 조망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업적은 베로나에 세워진 전신 동상으로 현재도 기려지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인 에라스무스가 ‘시필리스’란 단어를 사용하였고, 영국 피부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다니엘 터너는 자신의 논문에 영국 최초로 ‘시필리스’를 정식 명칭으로 썼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도 ‘시필리스’는 일반화된 용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프랑스 병’, ‘프랑스 폭스(pox)’, ‘스페인 폭스’, 또는 줄여서 ‘폭스’로 불렸다.

프라카스토로가 왜 시필리스라는 이름을 택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돼지 애호가(pig-lover)’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수스필리엔(susphilien, sus 돼지, philien 사랑하다, ‘돼지를 치는 천한 녀석’이란 뜻)을 사용했다는 주장과 오비드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니오베의 맏아들의 이름인 시필루스(Sipylus)를 택했다는 의견이 있을 뿐이다. 확실한 건 시필리스란 이름을 정한 이가 의사 시인 프라카스토로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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