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내 결정화 사고 자체 조사 후 '문제 없다' 결론…예전과 다르게 외부 공표·회수 조치 없이 '쉬쉬'

식약처 전경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정부가 일부 독감백신에서 유통과정 중 이상이 발생했음을 인지했음에도 불구, 내부 평가 후 ‘이상없다’고 결론내리고 발생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백신업계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계 등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독감백신 중 일부에서 결정화된 물질이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백신은 식약처 조사 결과 유통 과정 중 냉매와 백신이 직접 접촉해 백신 온도가 너무 낮아져버려 백신 내부에서 눈에 보이는 물질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독감 백신 보관 및 수송을 위한 적정 온도는 영하가 아닌 섭씨 2~8도다. 냉매와 백신이 직접 접촉하게 되면 백신이 적정 온도 이하인 냉매 온도 수준으로 떨어진다. 엄밀히 구분하면 이는 유통 과정 중 잘못으로 판단될 수 있다.

이에 식약처는 문제된 백신을 수거해 분석‧평가한 결과 ‘안전성‧유효성’에 문제가 발생치 않아 이상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결정화 물질이 발생한 백신에 대한 수거 명령 혹은 자진 회수 등의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외부 공표도 되지 않았다.

식약처의 이와 같은 조치는 그간 정부가 독감백신 이상을 발견한 이후 취한 조치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당시 식약처는 보건소에서 신고된 건에 대해 ‘대국민 발표’와 ‘회수 조치’ 등을 신속하게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백신업계 등에서는 문제된 백신들이 안전성‧유효성에 ‘큰 문제 없다’고 거듭 강조했으며 식약처 내부 평가 결과에서도 ‘안전성‧유효성에 문제가 될만한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해당 백신은 자진 회수 후 ‘폐기’ 조치가 유지됐다. 독감백신에서 백색입자가 발견돼 자진 회수 조치를 실시한 한국백신은 약 50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자진회수된 백신 4개 로트 중 2개 로트는 백색입자가 아예 발견되지 않은 백신이었다. 신성약품이 상온에서 유통한 백신의 경우도 백색입자 등 백신 내 이상현상이 보고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이번에 결정화 물질이 발견된 백신은 ‘내부에 결정화 물질이 발생되고’ ‘적정 유통 온도를 준수하지 않은’ 백신이다. 즉. 신성약품과 한국백신이 보여준 문제점을 모두 가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식약처는 내부 평가 결과 ‘안전성‧유효성’에 이상이 없다며 불문에 붙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스스로 ‘근거 중심 평가기관’을 제발로 찬 식약처

이번에 발생한 ‘독감백신 결정화’ 이슈에 대해 전문가들은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절차와 현상에서 문제가 확인되긴 했지만 안전성과 유효성에 영향을 가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즉, 식약처와 같은 판단을 내린 셈이다.

문제는 ‘과학적 평가기관이 동일한 문제점을 가진 사안에 대해 과학이 아닌 정무의 잣대를 들이대며 다른 판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업계는 이번 사안이 ‘그간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 과학적인 근거가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오히려 화를 키웠다는 점을 식약처가 학습해 이번에는 아예 발표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식약처의 국민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평가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식약처를 출입하는 한 기업 담당자는 “과학적인 평가를 거친 데이터는 식약처가 가진 무기이자 도구인데 식약처 평가 파트에서 아무리 평가 결과를 가져다줘도 정무 라인에서는 이를 중히 여기지 않고 말 그대로 ‘정무적 발표’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점은 자칫 같은 평가 데이터를 두고 해석을 정무적으로 내리는 ‘평가기관의 주관성 심화’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국내사와 외자사가 비슷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의약품을 허가 신청한 경우 식약처가 국내 기업 육성을 목표로 ‘정무적 판단’ 속에 국내사 제품만 허가해주는 극단적 사례도 나올 수 있다.

한편 식약처는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한 수차례 연락에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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