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관리 ‘의원 특화사업’ 고착화 필요

보건의료 선진화 앞당기자

만성질환관리제 시행 과제<3·끝>

케어코디네이터 조력 통해 동네의원 경쟁력 향상 기대
만관제 안착 위해 정부-의료계 신뢰 속 공조 뒤따라야

조현호

- 조현호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의무이사

올 초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의 닻이 올랐다. 이번 시범사업은 국정과제로 진행되며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만성질환을 효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합병증 감소와 건강수명을 연장하고 일차의료기관 역량 강화, 환자 신뢰 구축을 통한 경증 만성질환자의 대형병원 외래진료 감소, 의료전달체계 효율화 기반 마련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2014)과 만성질환수가시범사업(2016)의 통합·개편 안으로 진행하고 2020년에는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2007)과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2012)까지 통합하여 본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동네의원은 케어플랜, 교육·상담, 환자관리, 점검·평가, 케어 코디네이터 제도 등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환자를 관리하고, 환자는 지속적인 대면·비대면 관리를 제공받고 본인부담률 경감과 바우처 지원을 통한 일부 검사에 대한 인센티브 혜택이 주어진다. 여기에 더해 지역 내 자원 연계를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성과 보상제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참여 의원 모집은 개별 모집이 아닌 지역의사회 단위로 모집을 하고 있는데, 작년 12월부터 올 4월까지 있었던 3차례 모집에서 총 74개 지역의사회 2,578개 동네의원이 선정되었으며 5월에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 선도사업 실시 지자체의 지역의사회 중 일부가 추가 선정될 계획으로 전국 지역 의사회의 1/3 내외가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5월초 현재 신청의원의 60% 이상인 1500여개 의원이 실제 시범사업에 참여하여 총 9만 여명(의원당 평균 60명)의 환자가 등록되어 있다. 과거 수년에 걸쳐 진행된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과 만성질환 수가시범사업의 참여 의원 비율이 마지막까지 신청의원의 2/3 미만이었고, 의원당 참여 환자수가 40명 남짓이었던 점과 이번 시범사업 모델이 난해해 참여가 쉽지 않은 점까지 감안한다면 상당히 고무적인 수치이다.

이는 지난 수년간 의료계의 지속적인 노력과 동네의원의 사업 참여 경험이 쌓인 점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시범사업의 의미와 사업 성공을 위한 개선방안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먼저 이번 시범사업의 긍정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혈압·당뇨병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도입으로 낮은 조절률 개선하고 OECD 평균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입원율을 중장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 국민 건강수명을 연장하고 국가 의료비 절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빠른 고령화로 고령사회가 진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으로 만성질환자와 이로 인한 진료비가 크게 증가하고 있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사업이며, 최근 정부가 주장하는 가치기반에도 가장 부합하는 사업이다.

둘째, 진료의 패러다임 변화이다. 3분 진료와 약 처방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진료행태에서 포괄적인 평과와 관리, 질병과 생활습관에 대한 교육·상담으로 전환함으로써, 짧은 진료와 많은 수의 환자를 보아야 했던 오랜 관행이 개선되고 의사의 총괄적 책임 하에 케어코디네어터(현재 간호사, 영양사)의 조력을 더해 동네의원의 경쟁력 향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셋째, 일차의료 활성화와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일조할 수 있다. 이번 시범사업은 동네의원만이 참여가능하며 지역의사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지역의사회가 지역내 보건소, 건보공단 지사와 MOU를 맺고 지역운영위원회를 통해 운영하는 구조이다.

3만 여개 동네의원 중 절반 이상이 고혈압·당뇨병을 진료하고 있고, 의원 당 평균 환자수가 500명이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가개선과 환자 본인부담률 경감, 환자인센티브 도입으로 의원 운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재인 케어(선택진료, 상급병원 2~3인실 급여화, 간호간병제, MRI,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로 의료전달체계가 더욱 왜곡된 상황에서 동네의원만의 차별화된 분야를 개발하고 집중 지원하여 동네의원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의원·환자 관계 공고화를 통해 동네의원에 대한 환자 신뢰도를 높임으로써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넷째, 의료 현장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여 보건의료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 국민건강증진에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기존에 관 위주로 정책이 결정되던 의사결정 과정의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이번 시범사업의 안착과 발전적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 의료계가 상호 신뢰하에 함께 노력하는 흐름이 반드시 뒤따라야한다.

만성질환 관리의 성공을 위한 가장 큰 전제조건은 현장에 있는 의사, 환자의 높은 수용성이다.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는 의료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적극 반영하여야 한다. 의료계는 그동안 만성질환관리 사업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으며, 지금도 반대 의견이 적지 않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관주도와 소통부재에 따른 불신이다. 이번 시범사업 준비 과정에서 정부와 의협간 꾸준한 소통이 있어 왔지만 시범사업의 모델, 수가, 본인부담비율, 케어코디네이터 자격, 바우처, 전산체계, 청구방식 등에 관해서는 의료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구하기보다는 학회의 의견을 일부 반영하여 정부가 상당부분을 결정하였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어 본 사업 이전에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만성질환관리를 통한 국민건강향상과 일차의료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법적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내 만성질환관리와 일차의료 활성화를 위한 전담부서 설치가 필요하며, 제도 안정화와 동네의원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과 과감한 재정투입이 동반되어야 한다.

진정한 가치기반은 당장의 비용을 줄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과감히 예산을 투입하여 중장기적 성과와 재정 절감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환자관리 효과와 환자 만족도가 높은 케어코디네이터 제도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동네의원은 간호사, 영양사를 구인하고 싶어도 심한 구인난과 높은 인건비로 인하여 참여 동네의원의 10% 미만에서만 케어코디네이터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 이는 지금 조건으로는 실효성이 없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케어코디네이터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 케이코디네이터 자격요건에 대한 혁신적인 제도 도입과 별도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의료계도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 역의사회와 동네의원의 대규모 신청과 환자 참여로 나타난 회원 분들과 지역의사회, 환자분들의 정서와 민심을 제대로 읽고 이를 반영하여, 최일선에서 변화의 큰 흐름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향후 수년이 의료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하는 변곡점에 와 있으며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우선 이번 시범사업이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출범 후 만 4년 이상 지난 점을 감안할 때 고혈압·당뇨병 외 만성질환자와 고혈압·당뇨병을 주로 보지 않는 동네의원들도 만성질환 관리의 역할을 빠른 시일 내에 할 수 있도록 동네의원 다빈도 질환으로 또 다른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이끌어내어, 만성질환관리는 동네의원의 특화된 사업이라는 점을 고착화 시켜야 한다.

케어코디네이터 제도도 만일 현실에 맞게만 잘 디자인 된다면 동네의원의 입장에서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의사의 총괄적인 관리 하에 케어코디네이터가 역할 함으로써 체계적인 다직역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민건강증진, 일자리창출, 의원 운영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동네의원에서 2000년대 초중반 비만 비급여 시장이 급속히 활성화 되었을 당시 1인 의원에서도 코디네이터 제도가 활성화 된 바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의료계가 주도하여 케어코디네이터 자격에 대한 국민, 정부, 전문가를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80% 이상을 차지하는 1인 의원에서 효율적인 작동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초고령사회 진입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향후 40~50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시범사업이 진정한 소통과 혁신, 제도적·법적 정비, 과감한 예산 투자를 통해 만성질환관리와 일차의료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여 국민, 의료계, 정부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는 제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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