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울증 경험기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남겨…평생 환자에게 희망 주고 떠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진짜 죽음을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죽음이야말로 고통을 없애주는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결코 죽음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中’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지난해 12월 31일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던 중 한 환자가 숨겨온 흉기에 찔려 사망한 강북삼성병원 故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생전에 집필한 책자가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로 임세원 교수가 평생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살아가면서 만난 환자들의 사례와 본인이 우울증 및 자살 생각을 한 경험이 담겨있다.

故 임세원 교수는 주로 우울증과 불안장애와 관련된 100여 편의 학술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하는 등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지속했으며, 대한불안의학회 학술지 ‘ANXIETY AND MOOD’의 편집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부소장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직장인들의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故 임 교수는 한국자살예방협회 프로그램 개발 및 교육위원회장으로서 보건복지부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후원 아래 전국에 보급 중인 한국형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의 개발자이기도 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이 같은 임세원 교수의 솔직하고 진솔한 경험담이 담겨 있는 책이다.

故 임세원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왜 삶이 계속돼야 하는지, 마음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소개했다.

특히, 故 임 교수는 극심한 만성 허리통증을 느끼며 수반된 우울증상으로 자신 또한 ‘자살’을 생각했고 이를 극복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故 임세원 교수는 “환자들이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라고 하는 것이 가장 듣기 싫었다”며 “내 스스로가 우울증을 겪고 나서야 환자들이 했던 말의 의미를 뼛속 깊이 깨닫게 됐다”고 표현했다.

즉, 우울증의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환자들이 느끼는 감정의 실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

이 책에서 故 임 교수는 “막연한 희망은 금물이고 희망에는 근거가 필요하다”며 “근거 없는 희망은 결과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더 좌절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통해 희망의 근거를 찾기 위한 4가지 요소로 △신념 △현실 직시 △인내심 △지금 그리고 여기를 제시했다.

고인은 “나의 선의가 타인의 선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그 결과 타인의 선함을 경험하면서 나의 모난 모습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을 느낀다”며 “우울감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에도 내 과거 삶을 스스로 가혹하게 비난하며 더 큰 괴로움에 빠진다든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내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일도 줄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어 “사막을 건너는 데 필요한 건 한 병의 물이 아닌 한 줌의 희망”이라며 “뜻하지 않은 불운이 덮쳤을 때 우리는 절규하지만 불행에는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왜’에 집착하다 보면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으니 아프지만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故 임세원 교수는 신경정신의학과 의사로 일한 지난 20여 년 동안 환자들에게 받은 감사의 편지를 상자에 따로 담아 보관하거나 SNS를 통해 평소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글을 남겨와 더욱 안타까움을 일으켰다.

한편, 의료계 전역과 인터넷 상에서는 故 임세원 교수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이 성명서를 통해 침통함을 표했고,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관련 청원도 다수 올라온 상황이며 온라인에서는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이 퍼지고 있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