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발전, 대학원 설립이 대안인가?

정부는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을 구체화하고 부지선정 작업에 나섰으며, 학교 및 기숙사 설계비를 내년도 복지부 예산안에 반영했다. 정부가 설립을 추진하는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은 폐교 조치된 서남대학교가 있던 전북 남원지역에 서남의대 정원을 배정하여 2023년 개교한다는 목표로 알려져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의료계는 “또 사상누각을 짓겠다는 것이냐”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정치권으로 부터 대학설립이 기정사실화됐고, 정부는 실시예산까지 반영하여 이미 배가 떠난 상황이 됐다.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는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특히 의학교육에 관심이 높은 전문가와 지도자들은 더 큰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허갑범 연세대 명예교수다. 허갑범 교수는 당뇨병의 대가인 원로 임상가지만 연세의대 학장을 지냈고, 의학전문대학원 도입추진위원장을 지내는 등 실상은 의학교육 전문가다. 본지는 정부의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 무엇이 문제인지’ 의학계 원로의 고언을 듣는 기회로 허갑범 교수를 만났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물론 공공의료는 대단히 중요하고, 국가와 사회 모두 공공의료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대되고 발전하도록 힘을 모아야 될 사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공공)의과대학 신설로 접근하려 합니까.” 40여 년 전에 일본의 자치의과대학 신설을 예로 들었는데, 그때는 일본도 의료취약지역이 많았을 때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의료취약 지역이 별로 없습니다.

허갑범 교수<사진>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정부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그 문제를 소위 특성화 대학 신설로 해결해 보겠다는 방법론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의대 만든다고 공공의료 해결되나?

“전문의가 없어서 공공의료가 부실한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 의사 수는 넘쳐 납니다. 의사들이 공공의료에 관심을 갖고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남원에 대학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지역 민원 때문에 정치권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건 아닙니다. 가끔 뉴스를 보면서 대학이 없어진 남원지역의 경제가 피폐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 면 저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지역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된다고 봐요. 그 지역에 고용과 생산을 유발할 수 있는 민간투자의 유치나 다른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허 교수는 다들 지적하는 바와 같이 ‘원칙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공공의료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정책을 급조하여 의료대학을 만들어 봐야 본래의 목적을 기대하기 어렵고, 결국 불실한 의과대학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했다.

“지금 드러난 정부의 계획으로는 공공의료대학(원)이라는 것이 정체성이 모호해요. 궁극적으로 의과대학은 학생 교육과 임상실습을 위해 같은 곳에 부속병원이 있어야 하는데 대학을 남원에 세우고 서울에 있는 국립의료원을 학생실습을 위해 부속병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대비 활용가치 있나 생각해야

허 교수는 의과대학을 신설할 경우 부속병원은 물론이고 기초의학을 포함하여 적어도 30개이상의 전문과에 교수진 150여명 이상을 충원해야 하는데 세부 분야에 자격요건을 갖춘 교수요원을 어떻게 확보하여 정상적인 의학교육을 수행해 나갈 것인지 매우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 뿐 아니다. 의과대학이 정상적인 조직을 갖춰 대학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 하려면 학교건물은 물론 도서관, 연구소, 기숙사 등 엄청난 시설투자가 필요한데 과연 그 만큼의 투자나 활용가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허 교수는 대다수 대학병원들이 부속병원에서 임상교수들의 진료수익을 창출하고도 막대한 국고를 지원받아 어렵게 운영하고 있는데 임상진료를 통한 수익원도 없이 대학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너무 막연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국립중앙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을 부속병원화 하겠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그럴 경우 따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교수들의 학생교육과 실습은 물론 진료에도 차질이 생겨 의료의 모든 기능이 불실해 질 것은 불 보듯 한 것”이라며 자칫 교육 부실로 퇴출된 서남의대의 부활이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허 교수는 또 공공의대 졸업자들에게 졸업 후 9년 동안 각 지역 의무복무 기간을 갖게한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자들도 전문의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인턴‧레지던트 과정에 4~5년이 소요되고, 여기에 군복무나 공중보건의사로 3년을 복무(7~8년)하는 것과 비교하면 근무기간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대학은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더욱이 허 교수는 “계획대로 공공 의료대학이 2023년 문을 열어 졸업생을 배출한다 해도 인력을 가용하기 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과연 2030년의 의료체계나 상황변화를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고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허 교수는 효율성도 낮고 유지해 나가기도 벅차 국가적 손실이 뻔한데 왜 이런 정책을 밀어붙이는지 안타깝다며 “대학신설은 어디까지나 교육의 관점에서 의료계 전문가들과 협의하여 합리적이고 타당성 있게 접근하여 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아직도 때가 늦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가시적인 정책목표에 급급하여 밀어붙이려 들기보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경청하여 공공의료대학원 설립 문제를 원점에서 신중하게 재검토해야 된다고 봅니다.” 허 교수는 공공의료 발전방안을 의대 신설과 같은 추가 인력 양성으로 해결하려 들지 말라고 충고 했다. 아무리 대학을 만들고 의사를 많이 배출한다 해도 의사들의 진료시설이나 여건이 적절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우수한 인재들이 농어촌 등 지방을 외면한다는 것. 따라서 정부가 의료 소외지역을 없애고, 공공의료의 질적 수준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경험 많은 기존 의사들이 지방을 중심으로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적절한 여건을 조성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최선의 선택’ 이라고 길을 가리켰다. 이에 덧붙여 몇 년 전 국방의학전문 대학원을 신설하여 군의관을 양성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육해공군사관학교 졸업생들 수십 명을 기존 의과대학에 장학생으로 편입학시켜 군의무요원을 양성하는 사례를 들며 '이런 제도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허 교수는 “의료계(의사협회, 의학회, 의대‧의전원협의회, 병원협회)도 더 이상 의과대학을 만들지 않고도 공공의료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정부를 설득해 나가야 된다”며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정부가 발표한 융합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MD-phD' 양성 체계 도입 바람직

“의과학자를 양성하고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늦었지만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전적으로 환영합니다, 그러나 첨삭하고 싶은 것은 전공의 2-3년차에 선발하여 지원하겠다는 계획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봐요. 임상지식을 갖춘 의사들에게 기초 과학적 지식을 체득하게 하여 융합형 의사과학자를 만들어 보겠다는 얘기 같은데 계획은 좋아 보이지만 미국처럼 석‧박사 학위프로그램(MD-PhD)은 의과대학 학생 입학 때 시작해야 더 좋은 성과(의대4년, 박사학위3년)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허 교수는 하버드대학 등 미국의 MD-PhD 과정은 그 경쟁률이 수십대 1에 달하는 실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의과대학도 미국식 MD-PhD 과정을 도입하여 우수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의사과학자 양성제도와 관련, “이미 우리나는 의과대학 졸업 후 기초의학을 하거나 전문의 취득 후 연구자 병역특례제도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MD-PhD 과정에 관심만 가지면 병역특례를 받으며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고 말하고, “이미 KAIST에서는 임상 각과 전문의들이 병역특례로 박사 학위과정에 7~80명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의학계도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노학자의 충고이자 간절한 바람으로 들렸다.

허갑범 교수는 대학에서 은퇴한지 15년이 지났지만 최근의 국가 의료시책이며, 의료 현안을 꿰뚫고 있었다. 특히 의학교육이나 연구육성에 관한 철학과 열정은 예나 다름이 없어 ‘경험 속에 스승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듯 했다. 그러나 허 교수는 “다 지나간 사람이 쓴 소리를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그냥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싶고, 정책적 오류를 지적한 기록이라도 남았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아쉬운 듯 말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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