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관리협회 ‘기생충박물관’ 개관---국가 기생충 관리정책 방향타 역할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과거 우리나라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먹고사는 문제’ 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가 있었다. 기생충 감염률이 95%에 달했던 시절, 외국에서는 ‘기생충 왕국’이라고 부를 정도였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WHO에서 토양매개성 기생충인 회충·편충·구충뿐만 아니라 사상충증 퇴치까지 인정한 기생충 퇴치의 모범적인 국가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로 좁아지는 세계 속에서 해외기생충과질환과 식품매개성 기생충질환의 위협이 날로 증가하고 있어 기생충퇴치 전역(戰域)은 현재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이에 비해 기생충에 대한 국민 인식은 ‘과거의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다. 이러한 기생충 분야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국민 관심을 고취시키는 상징적인 존재가 있다. 다름 아닌 제1종 박물관으로 등록된 국내 최초·유일의 한국건강관리협회 ‘기생충박물관’이다.

다가오는 과거, 다시 기생충이다!

박물관은 대학과 그 기원을 같이할 정도로 교육의 기능이 많이 부각돼 있다. 현대의 박물관은 단순히 학술 자료를 보관하는 곳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교육과 체험의 장소로 활용해 정보 전달과 사회공헌 기능을 수행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박물관은 전시물의 보존뿐만 아니라 표본 제작 기능까지 가지고 있어 ‘한 문화, 분야에 요람’이라 할 수 있다.

기생충박물관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전신인 한국기생충박멸협회 시절부터 누적된 기생충 퇴치를 위해 사용하였던 검사용 기자재, 치료약품 및 영상물, 슬라이드 등 홍보자료와 기생충 표본을 전시, 기생충 관리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국민 모두에 대한 보건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기생충 전시관을 설립했다. 구성 또한 전시실과 기생충병연구소, 저장고까지 갖춘 ‘완전한 박물관’의 모습이다.

박물관의 매력은 한창 지식을 습득하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현장 경험을 통해 실체화시켜 즐거움과 이해도를 높이는데 있다. 미국 LA에 ‘라 브레아 타르 피트 박물관’으로 일컬어지는 조지 C. 페이지 박물관은 3만년 전에 타르 연못에 빠진 동물들의 화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과정과 실험실을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학생들이 화석을 분류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어 박물관에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라 브레아 타르 피트 박물관처럼 기생충박물관의 ‘체험-학습-연구’의 구성은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장이 생각하는 ‘기생충질환의 재조명’과 관련 있다. 과거에 국가와 협회 전신인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중심축이 되어 기생충퇴치를 이끌었다면 현재는 그 구심점이 다소 약해진 상태다. 박물관 건립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채종일 회장은 박물관의 건립 목적에 대해 기생충의 체계적인 보존·전시와 함께 소외된 기생충분야에 대한 재조명을 들었다.

“한국인의 기생충은 박멸이 아닌 감염상의 변동으로 경향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체 국민의 기생충 감염률은 감소했으나, 기생충의 종류는 다양해져 진단과 치료가 어렵고 전문성을 요하는 특수 질환군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단순히 위협이 아닌, 기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생겼다. 전 기생충관리전문위원장인 충북대 의과대학 엄기선 교수는 “세계적으로 기생충은 이제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약제로 각국에서 맹렬하게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기생충박물관은 국가 기생충 관리 정책을 가이드해주는 방향타를 최종 목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해방 이후 국민 건강증진의 초석이었던 기생충퇴치사업이 이제는 신개념의 기생충 관리 정책으로 탈바꿈하는 꿈을 기생충박물관이 꿈꾸고 있다.

건강관리협회 기생충박물관은?

서울시 강서구 화곡로 333에 위치한 ‘기생충박물관’은 지하1·지상3층 건물로, 1층과 2층은 ‘Amazing Panorama(놀랍고 아름다운 기생충의 진짜 모습)을 주제로 한 전시실이 구성되어 있으며, 지하층에는 영상실·공용장비실·저온고·수장고, 3층에는 기생충병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전시관 1층은 기생충의 개념과 분류, 고문서에 등장하는 기생충, 미라가 들려주는 기생충 이야기, 한국 기생충관리의 역사, 경제성장과 기생충 감염상 변화, 기생충의 이모저모,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인체의 장기별 기생충 소개, 연가시 등 재미있는 기생충 이야기, 70년대 학교에서의 집단 투약을 재현한 디오라마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은 선구자의 길(기생충연구의 발자취), WHO 중점 기생충 관리 지역의 정보를 지도로 연출한 세계 주요 기생충, 협회의 NGO 사업 재조명, 치료제 등으로 이용되는 기생충 연구의 미래비전, 한국 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발견한 기생충, 기생충 게임 등 체험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무료관람으로 운영되는 ‘기생충박물관’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자유관람이 가능하며, 전시설명은 사전예약시 신청할 수 있다.

대구서 ‘세계기생충학회총회’ 개최

한편, ‘세계기생충학회 제14차 총회 및 학술대회(ICOPA 2018)’가 오는 8월 19일부터 24일까지 대구컨벤션센터(EXCO)에서 열린다.

이는 지난 2014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13차 ICOPA 총회’에서 경쟁국인 태국(방콕)을 제치고 승리하여 차기 개최권을 따낸 결과로,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 주최, 세계기생충학회 조직위원회 주관, 한국건강관리협회 후원으로 개최된다.

이번 총회 대회장을 맡고 있는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장은 “저명한 의학·과학자들이 모여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소통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생충분야 총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세계 80여 개국 2000여명이 참가하여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소통하고, 기생충을 인간에게 해로운 병원체로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점까지 널리 감안하여 연구해야 함을 강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총회 기간동안 전시홍보부스를 운영하고, 대구지하철 3호선 공단역에 기생충테마역을 조성하는 등 제5군 감염병을 지원하는 법정 단체로서 그 역할을 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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