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또 다시 터지고 말았다. 아니, 터진 일이 묻히지 않고 언론을 탔다.

수년 전부터 잊을만하면 반복돼 오고 있는 ‘응급실 폭력’에 이제 의료계는 지칠 만큼 지친 분위기다.

응급실 폭력을 가한 가해자를 향한 분노도, 나머지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두 번 다시 이런 폭행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외침도, 정부를 향한 특별한 요구도 할 힘이 없어 보인다.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오후 10시경, 전라북도 익산시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환자가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무차별하게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전문의는 기자와의 첫 통화에서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안전과 다른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가해자의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피해 전문의는 기자와의 두 번째 통화에서 ‘경찰이 가해자가 손이 아프다고 해 귀가조치 시켰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는데 혹시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 보복이라도 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익산경찰서는 가해자를 응급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사건을 담당한 익산경찰서 형사 2팀이 3일에 수사를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에 피해 전문의의 고소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뼈 골절, 뇌진탕 증세, 목뼈 골절 등 전치 3주의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고 가해자의 과도한 협박으로 심신이 허약해진 피해 전문의는 ‘의사가 아닌 몸과 마음이 다친 한 사람으로서’, ‘의사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목숨을 보호 받아야 할 한 국민으로서’ 아무것도 보호 받지 못했다.

이쯤 되면 의사는 무자비한 폭행도 견뎌야 하는 직업으로 완벽하게 인식된 듯 하다.

그동안 의료계가 입이 마르도록 주장해온 ‘또 다른 응급환자의 진료를 볼 수 없어 환자 안전이 위험하다’, ‘응급진료의 공백이 우려스럽다’ 등의 직언은 차치해두자.

이제는 의사를 수많은 직업 중 한 직군, 수많은 사람 중 한 인간, 5천만 국민 중 한 시민으로 바라보고 근본적인 접근을 할 때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유독 의사에게 강력한 윤리의식과 책임감, 희생 등을 강요한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른 직업군보다 더 높게 신경써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의사가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는, 지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마블의 ‘어벤져스’ 멤버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고향 후배가 이번 익산병원 응급실 폭행사건이 일어나기 정확히 일주일전에 ‘오늘도 취객에게 한방 맞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기자가 ‘괜찮냐?’고 물으니 그 후배는 ‘일상이야’라고 답했다.

분명 그 후배도 의사이기 이전에 맞는게 싫고 두려운 사람이고 보호받고 싶은 국민인데, 그의 대답은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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