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 명분 단일 시스템 강요는 불합리

국가 최소 인증기준 제시 시장 경쟁 체제 바람직
인증 의료기관 부담 덜어줄 제도적 지원책 마련도

전상훈
대한병원협회 병원정보관리부위원장
분당서울대학교병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2000년대 이후 국내 병원들은 전세계에서 유례없이 자체적인 노력으로 병원 업무를 성공적으로 전산화하였고, 그 결과 국내 대부분의 병원들이 전자의무기록(Electrical Medical Record, EMR)을 사용하고 있다.

2016년 보건산업진흥원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의 71.3%(상급종합병원 90.6%, 병원 76.9%, 의원 61.4%)가 전자의무기록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 전체 EMR 보급률은 상당히 높으나, 상급종합병원과 병원 그리고 의원간의 전자의무기록 보급률의 격차가 상당히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실제 통계와는 다르게 의미 있는 정보의 생산 및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국내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의 높은 보급률 수치는 다소 허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료기관은 왜 전자의무기록을 사용해야 하는가? 종이 차트에 의무기록을 작성하던 시절에는 의무기록이 데이터로서 효용성 및 접근성이 매우 낮았다.

특정한 통계를 정리하거나 활용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아예 찾지 못하는 자료도 많았다. 병원이 원하는 자료를 검색하고 분석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고, 의학연구를 위한 자료검색에도 매우 어려움이 많았으며, 데이터의 정확성이나 연속성 확보도 거의 불가능하였다. 전자의무기록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의무기록에서 의료데이터로 전환이 되었으며, 비로소 병원 데이터 활용의 첫걸음을 시작하였다고 봐야 한다.

병원 주도로 개발된 우리나라의 의료정보시스템은 장점도 있으나 단점도 많다. 한 기관 내에서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자기 기관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을 잘 만들고 가꾸거나 또는 자기 기관에 맞는 시스템을 구매하는 방법이 있겠다. 그러나 각 기관이 제각기 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 그 기관에는 최적화 될 수 있으나, 전자의무기록을 데이터화하여 의료기관들과 정보를 교류하거나 공공의 보건 정책 수립에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 하나는 제각기 다른 시스템을 활용함으로써 각 의료기관의 EMR 수준이 천차만별이 되고, 지속적으로 EMR을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적절하고 지속 가능한 EMR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다.

2018년 현재 국내에 EMR 사업체는 약 100여개가 있다. 이들 중 몇 개를 제외하고는 규모도 작고 영세하며 저가 경쟁을 통해 사업을 수주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이어서 각 기관마다 사용하는 EMR이 제각기이며,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에서 EMR 인증제를 통하여 EMR에 적용되어야 할 기본 표준을 정립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표준 적용은 기관별 차이로 인해 의료기관 간의 정보공유가 불가능한 시스템을 정보공유 및 교류가 가능하도록 하는 초석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표준을 따르는 시스템을 개발하도록 업체들을 유도하거나 표준을 적용하지 못하는 업체 및 이러한 제품이 표준을 따르도록 하거나 시장에서 정리되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미 이러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사업체들이 있고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가 개발하거나 특정 EMR을 억지로 보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시장들이 국가가 최소한의 인증 기준을 만들고 시장의 각 플레이어가 여기에 맞춘 좋은 질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 하는 유인책으로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노력을 꾸준히 시행한 사례를 참고해야만 한다.

효율만을 앞세워 국가 표준이라는 이름하에 한 가지 소프트웨어를 강요하는 것에서 올 수 있는 부작용과 독과점에 따르는 폐해를 생각하면 더욱 획일화 된 시도는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영국의 NHS가 유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다가 천문학적 예산을 낭비하고 결국은 미국을 비롯한 경쟁체제 하의 소프트웨어에 시장을 내어준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물론 표준화된 인증 기준을 따른 소프트웨어의 도입에 따라 의료기관들이 인증을 받은 EMR을 도입하는 경우 정부의 지원을 통해 도입 및 유지에 따른 부담을 경감시켜줘야 한다. 그러한 지원이 결국에 인증을 받은 EMR이 확산 보급되도록 하게 할 것이며, 아울러 많은 업체들의 저가 경쟁으로 인한 의료기관의 피해 및 사업체간의 무한 경쟁을 통한 업체의 폐업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의 시장 환경이 조성되면 EMR 개발 관련 전문가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고, 지속적인 성장 및 발전이 가능한 시장이 형성된다. 파생적으로 EMR과 연관된 분석 사업 시장도 성장할 토대가 형성될 것이며, 진정한 4차 산업 혁명이 헬스케어 분야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행스럽게도 보건복지부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 병원정보시스템에 대한 병원 종별에 따른 인증 기준을 정립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러한 노력이 우리나라 병원들의 병원 정보시스템의 비용 대비 최대의 효용성을 가질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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