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장

우리나라는 경제·정치만 놓고 보면 선진국이다. 경제협력개발(OECD) 회원국이며,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의료, 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 선진국 수준 못지않은 번영을 누리고 있다. 정치에 임하는 자세는 어떠한가? 수백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가 3개월 이상 지속되었지만 폭력사태는 없었다. 주요외신들이 “한국의 촛불시위는 비폭력·민주적 저항운동이다” 라고 표현할 정도로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선진사회가 아니다’ 라고 한다. 심지어 지옥에 비유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고,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결혼을 해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어떤 신혼 여성의 “내집 마련은 이생망(이번 인생 망했어)인 거 같아요” 라는 말에 절망감을 느낀다. 어려운 형편 탓에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부부가 늘어가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100여 만 명이 출생하였는데 금년엔 30만 명 선까지 주저앉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80년 후에는 인구가 반 토막 난다고 한다. 온통 우울한 뉴스로 가득하다.

이렇게 비관적인 사고가 넘치는 것이 2000년대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필자가 학교에 다니던 1960-70년대에 우리 스스로를 비하해 ‘엽전이 별 수 있어’ 라느니, ‘한국 사람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전에 Korean time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허리띠 졸라매고(tight belt), 참고 노력하면 3C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라고 했다. 자동차(car), 컬러 TV(color Television), 에어컨(air conditioner)의 앞글자인 C를 딴 용어이다. 그 때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억 달러가 목표였다.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8000달러, 수출 5000억 달러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 때를 산 노인들은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도 삶은 왜 이리도 팍팍한가. 그것은 우리 사회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웃을 배려(配慮)하는 마음이다. ‘갑질’이 좋은 예다.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을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가맹점에 대한 본점의 횡포. 아르바이트 청년, 식당종업원, 택배기사들이 어떠한 대우를 받는가. 얼마 전 주유소에서 근무하는 지적장애인이 “말투가 싸가지 없다” 며 고객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는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배려는 선진국으로 가는 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다. 아무리 잘 살아도 나와 내 가족만 챙기는 사회는 후진사회다. 이웃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감사는 지금의 내가 있음이 나의 노력과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는 자각(自覺)에서 출발한다. ‘현재의 나’는 먼저 살아간 분들의 ‘희생’ 덕분이다. 국립현충원에 가면 꽃다운 청춘을 나라에 바친 영혼들이 누워있다.

이들의 생명이 나라를 지켜 냈다. 열사(熱砂)의 사막에서 근로자들이 흘린 땀, 사체를 닦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간호사들의 노력이 경제적 풍요를 이룬 토대가 된 것이다.

지금도 주위를 돌아보면 낮은 임금과 힘든 조건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다. 이들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갑질의 횡포’는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존댓말을 쓰게 될 것이다. 서비스를 받았으면 감사하다는 말이 당연하게 나올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이러한 배려 사회가 될 때 고통과 아픔이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추구했다. 노인, 고아, 과부 등 힘 없고 어려운 이웃을 우리의 부모와 형제처럼 여기는 사회를 꿈꾸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따뜻하고 명랑한 사회를 만든다. 이것이 곧 선진사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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