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치료자 공감동 통한 치유 효과적 …“우리는 갑을 관계 되어선 안 돼”
정배연 오산신경정신병원장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심각한 감염성 질환들은 대부분 정복됐고, 10년 전까지만 해도 난치였었던 암의 10년 생존율도 50%를 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신적 문제들의 일부이거나 또는 어떤 단일 정신질환도 정복된 것이 아직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류가 그 영향 아래 평생을 사는 ‘정신’이란 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아직 인식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정배연 오산신경정신병원장

정배연 오산신경정신병원장은 최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정신과 의사로서의 깨달음 그리고 환자 치료와 병원 운영 철학을 알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을 읽고 정신분석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정배연 원장은 전문의가 되면서 향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쪽을 택할까, 아니면 융의 분석심리학을 택할까 고민하던 중 다음의 회의가 떠올랐다.

A가 맞을까? B가 맞을까? 아니면 둘 다 틀린 것은 아닐까? 하나라도 맞는 것이라면 왜 지금껏 그 많은 정신질환들 중에 그 어느 하나도 정복이 되지 않은 걸까? 결국 어느 한 쪽을 택하지 못했고 대신 스스로 찾아보자고 결정했다. 정신질환이란 무엇일까? 정신이란 무엇일까? 과학적으로 정확히 파악한다면 완전한 해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정 원장은 “지난 2002년 모든 것을 동원해 상담을 진행했지만 변화를 보이지 않던 내담자와 씨름을 하던 중 우연히 간단한 사실을 발견했다”며 “지금까지는 그 어느 한 사람도 의심이나 회의해본 적이 없이 너무나 당연히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인간의 본능이라고 여겨왔던 ‘좋다’와 ‘싫다’라는 것이 모순이고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간단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좋다’와 ‘싫다’는 모순이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 쉽지 않았다. 새로운 물질의 발견이라면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또 지금의 모든 인류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고 또 살고 있는 어떤 것(좋다/싫다)이 실제로는 없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설명하는 방법이나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

정배연 원장은 “방법이나 과정은 아직 과제로 남아있고 노력 중이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좋다’와 ‘싫다’는 그 자체로 모순이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다. 있다고 잘못 여기는 것일 뿐”이라며 “마찬가지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나’도 상상 속의 내용일 뿐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꿈을 꿉니다. 꿈속의 주인공인 ‘나’는 자신이 좋아서 추구했던 것을 모두 다 이룬 ‘나’를 상상하면서 그렇게 되려고 애쓸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에 따르면 모든 정신적 문제들을 포함해서 모든 정신질환들은 좋다/싫다의 이분법에서 파생한 잘못된 상상에서 비롯된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상상’이 못났다(열등감)와 잘났다(우월감)라는 상상이다. 여기서 ‘상상’이라는 말은 단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자체로 현실일 수 없고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어떤 것을 뜻한다.

그는 “정신의 내용은 좋다/싫다에서 파생한 모든 이분법들입니다. 정신의 주체는 자신 안에 있는 “좋다/싫다”라는 상상 속 기준을 근거로 정신의 주체인 “나”를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재단하고, 결국 자신의 기준대로의 “못난 나”를 자신의 기준대로의 “잘난 나”로 바꾸어 보려고, 또는 그렇게 보이게 하려고 평생 기를 쓴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모든 정신질환은 “나는 못났다”라는 잘못된 상상이 만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의 상상력을 동원해 결국 “나는 못나지 않았다(또는 나는 잘났다)”라는 상상을 만들면서 직전까지 있었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거나 결과“라며 ”이 때 뒤의 상상이 소위 말하는 증상이 되는데 모든 정신과 의사를 포함해서 관계하는 모든 치료진들은 이 증상의 해소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환자와 치료자 모두가 공감하고 감동하는 콘서트 개최

2012년 개최된 콘서트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정배연 원장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공감동(공감과 감동)을 주제로 여러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매년 가족 없는 환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바자회가 개최되고, 한 달에 한 번 50명 정도의 입원환자들과 직원들이 함께 근처의 수목원이나 제부도 등으로 소풍을 간다. 입체음향이 갖춰진 영화관에서 영화관람도 있는데, 가장 감동적인 행사가 봄·가을로 진행되는 콘서트다.

정배연 원장은 “2012년 가을 다른 의사 한 사람과 같이 세 달을 연습해서 첫 콘서트를 열었다. 이미 위/아래, 갑/을, 잘났다/못났다 등의 모든 이분법이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저는 모든 관객들(300명 이상의 재원환자들과 많은 직원들)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대하지 않았고, 내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전의 다른 의사들이나 직원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대하면서 열심히 콘서트를 진행하는 연주자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콘서트는 환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을 넘어 자연스럽게 모든 치료진들이 재교육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로 병원의 분위기는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환자와 치료자는 다친 손과 그 손을 감싸는 손의 차이일 뿐 갑/을의 관계도 아니고, 위/아래의 관계도 아님을 직원들에게 설명했고 거의 모든 치료진들이 이 사실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정 원장이 취임한 2014년 7월을 경계로 전후의 3년간을 통계 조사한 결과 그 이전 1년 반에 비해 그 후의 1년 반 동안의 격리 강박 횟수가 1/3 수준으로 급감했다. 다른 예로, 작년까지는 월 1회 주로 근처의 수목원으로 소풍을 갔었다. 가깝기도 하고 또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올해는 서해의 궁평항과 제부도로 벌써 네 번 소풍을 다녀왔다. 그 동안 바닷가 소풍을 시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다른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걱정 때문이기도 했는데, 지난 네 번의 바닷가 소풍을 통해 환자들과 자신들 사이에 있었던 이분법적인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치료진들이 실제로 경험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정배연 원장은 “정신병원에서는 흔히 레크리에이션이나 노래방 프로그램 등이 보조치료의 일환으로, 주로 사회복지사의 주도로 시행되고 있다”며 “하지만 위에 나열한 행사들을 포함해서 우리 병원에서 진행되는 모든 치료와 치료적 프로그램들은 보조치료의 일부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정신과적 치료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산신경정신병원에서 그는 모든 직원들에게 “나는 못나지 않았다(나는 잘났다)”라는 증상을 없애는 시도보다는 환자들의 “나는 못났다”라는 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이해하고 이 잘못된 생각이 자극되거나 부추겨지지 않도록 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치료라고 납득시킨다.

끝으로 정 원장은 “치료진들 역시 아직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라 그 한계는 있지만, 치료진들과 환자의 관계가 위/아래의 관계도 아니고, 갑/을의 관계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만 조성되어도 환자들의 치료는 그만큼 수월하고 빨라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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