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준 교수의 신년 수필

유형준 한림의대 내과 교수
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시인·수필가·의사평론가

테세우스는 배를 타고 돌아온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라고도 알려진 고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테세우스는 아티케 반도를 통일한 공적으로 아테네에선 개혁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는 사람 머리에 소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친 영웅이기도 하다. 크레테의 미노스에게 패한 아테네는 미노스에게 미노타우르스의 먹이로 청년들을 보내야만했다. 공물로 보내진 테세우스를 사랑한 미노스의 딸은 그에게 실타래를 주고, 괴물을 죽이고 남은 청년들을 구출한 테세우스는 미로 입구부터 풀며 들어간 실을 되감으며 탈출한 후 바다를 건너 귀국한다.

테세우스의 놀라운 활약상만큼 유명한 것은 바로 그가 타고 온 배다. 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탄 배는 서른 개의 노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그의 공적을 아낀 아테네인들은 부식된 헌 널빤지와 노 등을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를 덧대어 붙이고 갈아끼기를 거듭하며 근 천 년에 걸쳐 보수 유지하였다. 이렇게 보존된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 불리며 철학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논리학적 논변의 소재다. 즉, “배의 모든 부분이 교체되었더라도 그 배는 여전히 ‘바로 그 배’ 인가?” 라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어떤 이들은 배가 그대로 남았다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 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테세우스의 역설을 논하여 수천 년째 다루어지고 있는 논제의 답을 구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 다만, 상황에 따라 가장 쓸모 있는 배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은 가지고 있다. 아무리 최첨단의 선박이라도 그 크기가 너무 크면 작은 호수엔 뜰 수가 없을 것이고, 초호화 유람선으론 다량의 원유를 운반할 수는 없다. 더구나 가장 좋은 배라도 능력이 딸리는 선장이 조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두터운 논리로 박제된 테세우스의 배는 전연 새로운 용도를 지닌 채 튼튼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테세우스가 탔던 배는 철학과 논리의 바다를 떠도는 배로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해석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준히 모아 보수 유지되며 시공을 초월하여 바로 이 시간에도 에게해보다 훨씬 더 넓은 사상의 바다를 순항하고 있다.

흔히 인생을 배를 타고 헤쳐가야 할 시간이며 공간으로 비유하곤 한다. 예를 들면 배와 물을 남녀 관계로 빗대기도 하고, 세파가 평탄치 않은 때엔 군주수어(君舟民水)라는 말이 눈에 띄기도 한다. 이천삼백여년 전경 중국의 순자의 말로 원문은‘군자주야 서인자수야 수즉재주 수즉복주(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어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그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예 평화, 사랑, 이별, 죽음, 고통, 정보 등이 가득히 넘치는 바다를 개인은 물론, 조직, 사회, 국가 등의 배가 지나간다고 표현한다. 기독교에선 교회를 방주라 일컫기도 한다. 결국 삶은 나만의 작은 배와 공동체의 큰 배를 타고 가는 일이다.

지금은 모두가 무한 경쟁 속에서 진지한 노력이 소모적 비교에 지쳐 각 개인의 배도 공동체의 배도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다. 이렇게 시간도 공간도 그 시공 속의 콘텐츠도 바뀌는 시대에 나와 우리의 배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장착하고 무엇을 더 실어야 하나.

조선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배를 ‘만든다’거나 ‘짓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에 배를‘모은다’고 한다.

선박 설계에서 착공, 기공, 진수, 선박 인도 명명, 취항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단계는 짓거나 만드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모으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음의 공정은 작은 나룻배에서 대형선박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관계없이 고루 거친다. 배를 구하기로 작정하여 도면 위에서 설계를 하여 종이배를 만들 때부터 배를 띄울 물의 상태를 비롯한 환경 변수들을 모으고, 돈을 모으고, 사람을 모으고, 배의 부분부분을 모은다. 조선사의 입장에서도 이미 만들어 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주문자의 주문 용도에 따라 그때그때 맞춤으로 건조하기 위해 모으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크기의 삶을 헤쳐 나아갈 배든 정보를 모으고 비용을 모으고 사람을 모으고 사람의 우정과 인정을 모아 짓고 고치고 다듬어야한다. 세월이 쌓이듯 사람이든 능력이든 부품이든 모아야 배가 된다. 그러나 모아 놓기만 한다고 배가 뜨는 건 아니다. 복원력 안정성을 갖춘 모음은 한 군데로 집중하는 힘이 필요하다. 중심이 또렷해야 한다는 말이다. 홀로 젓는 배든 공동의 배든 중심을 세워 모아야 한다. 바로 비전이며 방향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낡았으면 바닥부터 갈아야 하고, 휴먼웨어가 못마땅하고 비전이 흐릿하면 넉넉히 비워 오히려 가득한 마음과 밝은 눈의 도움을 정성껏 모아 채워야 한다.

배가 순항할 때엔 별 탈이 없으나 배 안팎의 문제로 암초를 만나 고난을 당하여 난파를 당할 때에 생존과 발전이 갈린다. 한 배에 모인 힘들은 풍랑을 맞아도 함께 맞고 새벽을 맞아도 같이 맞는다. 합력과 배려의 바탕 위에 중심을 세워 뜻을 모으고, 마음을 합하고 생각을 보태고 모아야 한다. 그래야 제 길을 올바로 간다. 배는 정박이 아닌 운항을 위해 존재한다. 그 당당한 존재를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의 어조로 응원한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