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원에서만 일한 ‘一片丹心(일편단심)’ 남녀 간호사 8인 솔직 토크
‘천직이 간호사’, 3년차부터 20년차까지 평균 경력 11년의 무게감

의료계 인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간호사. 간호사들이 직접 스스로를 이야기 하는 ‘OOO간호사’ 그대로의 모습은 어떨까. 일하고 있는 장소도 다르고 경력도 다르지만 한 병원에서만 근무해 오고 있는 ‘일편단심형’ 간호사들이 스스로의 경력을 터놓는 시간이 마련됐다.

다양한 경력의 간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간호사 경험을 털어놓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과 서울의료원 간호사들은 일정상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인사로 전했다.

‘3, 6, 9, 11, 11, 12, 16, 20’. 간호사 8인의 경력이다.

당초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진행되는 허심탄회한 토크의 장이 목표였지만 아쉽게도 8명의 스케줄을 한날한시로 조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 키워드 - 자기소개

[정종욱] 2014년에 강동경희대병원에 입사한 정종욱이라고 합니다. 응급실 간호사로 3년째인데 여기 계신 선배님과 경력차이가 많이 나네요. 좋은 얘기 나누길 기대합니다.

[조선미] 저는 강동경희대병원이 오픈한 2006년 다음해인 2007년부터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소화기외과에서 일했는데 3년 전부터 특실로 옮겨서 근무 중입니다.

경희의료원 강영윤 간호사와 강동경희대병원 특실 조선미 간호사, 응급실 정종욱 간호사(왼쪽부터)

[강영윤] 20년전에 경희의료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소화기내과 병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병원 안이 아닌 곳에서 다른 병원 간호사분들을 뵙게 돼서 신기하네요.

[권은영] 2004년부터 중앙대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권은영 간호사라고 합니다. 혈액종양내과에 있고 3주 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 오픈해 한창 적응 중에 있습니다.

[이미경] 저도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하고 있으며 내과병동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름은 이미경이고 용산병원 때부터 일했으며 경력은 16년차입니다.

[배혜림] 먼저 타 병원 간호사 동료 분들과 함께하지 못해서 무척 죄송할 따름입니다. 재미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아서 참석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고 싶네요. 이름은 배혜림이고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수술실에서만 11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서광진]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남자 간호사는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한분만 참석하셨다고 들었는데 어색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11년째 강남성심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중환자실입니다.

[이화진] 안녕하세요.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 내과병동에 있는 6년차 간호사 이화진이라고 합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은 3년째이고요. 이와 관련해서 타 병원 간호사 선·후배님께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참석하지 못해서 아쉽고 죄송하네요.

■ 키워드 - 하루 일과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미경 간호사(왼쪽)와 권은영 간호사

[권은영] 새 부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업무도 일정부분 바뀐 것들이 많고 아무래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환자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간호사들도 하루 빨리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이미경] 6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병원에 도착하면 8시가 됩니다. 기본간호부터 시작하는데 통합서비스니까 환자분들 머리 감겨드리고 베드 청소, 냉장고 청소 등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버리네요.

[조선미] 특실은 혼자 수술 받으러 오는 외국인 환자분들이 대부분인데 그만큼의 높은 서비스를 원하기 때문에 혼자 오는 것이죠. 다시 말해 통합서비스병동은 아니지만 VIP대우를 위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간호사가 도맡아서 하는 일이 많아 통합서비스병동 같다고나 할까요.

[서광진] 중환자실 특성상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거의 모르게 됩니다. 화장실까지 참아가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죠.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 또한 화장실에 갈 때입니다. 중환자실 안에 남자화장실이 없어서 밖으로 나가야만 하기 때문이죠.

[이화진] 오전 8시부터 식사, 양치, 구강간호, 세수 등을 도와드리고 9시부터 체위변경, 기저귀 배설간호, 환복 등을 돕습니다. 이후 바로 주임간호사 1명, 간호사 1명, 간호조무사 2명이 한 팀으로 라운딩을 돌기 시작하죠. 내과 병동이다 보니까 중증도가 심한 분들도 계셔서 총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오전 일과는 끝이 납니다.

■ 키워드 - 직업 선택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수술실 배혜림 간호사(왼쪽)와 중환자실 서광진 간호사

[배혜림] 사실 음악을 전공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것일 뿐 진로고민이 많았는데 그때 간호사였던 어머니와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저와 달리 많은 도움을 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멋져 보여서 자퇴를 하고 간호대를 다시 가게 됐죠.

[강영윤] 봉사활동은 아니지만 저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학창시절 때 간호사를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죠. 그 말씀을 따라 간호대학에 진학하고 공부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어버렸네요.

[기자] 남자 간호사분들은 조금 다를까요?

[정종욱]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취업이 잘된다는 말에 끌렸습니다. 직업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실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죠. 비록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남자로서 간호사라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선배 남자간호사들한테서 느꼈고 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자긍심도 생기더군요.

[서광진] 비슷합니다. IMF를 겪으면서 취업이 잘되는 쪽을 생각하다보니까 간호사를 택하게 됐고 중환자실의 경우에는 장비를 많이 다루는데 개인적으로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해서 적성에 맞더군요.

[기자] 남자간호사로서 일해 보니까 어떤가요? 아직은 직업 특성상 여성분들이 더 많은데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정종욱]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자간호사이기 때문에 더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죠. 다양한 환자의 성향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미숙하지만 항상 긴장의 끈을 놓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사로 오해 받는 경우도 많아요. 간혹 여자 간호사에게 막대하시는 환자분도 남자간호사에게는 함부로 안하시는데 이런 인식차이는 안타깝습니다.

[서광진] 반대로 환자들이 오히려 남자간호사라고 꺼려하고 멀리하는 것이 힘들었죠. 제가 담당이라고 얘기해도 여자간호사를 불러달라고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배혜림] 보통 남자간호사가 적응은 느려도 여자간호사와는 다른 안목이 있는 것은 맞아요. 여자의 군대라고 불리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남자가 들어옴으로 인해 효율성과 분위기 면에서 훨씬 나아졌죠.

■ 키워드 -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이미경] 처음으로 환자에게 들은 말이 양말을 벗겨달라는 것이었죠. 그 다음은 슬리퍼 심부름이었고요. 예상 했던 것들이 막상 닥치니까 많이 당황스럽더군요. 아무리 가이드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가 어른이 무언가 해달라고 하면 쉽게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다 보니까 결국 간호사와 환자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 같다는 느낌입니다.

[조선미] 신규 인력 채용이 원활하지 않을 때 병동별로 지원자를 받았는데 이마져도 지원하려는 간호사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막연한 거부감과 불안감이 퍼져 있었다고 할까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해서 처음 같은 거부감은 없다고들 하더라고요.

서울의료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내과병동 이화진 간호사

[강영윤] 곧 저희 병동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중환자실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거부감이 들지는 않아요. 어떤 병원에서 적혀 있던 ‘통합서비스는 여러분의 손발이 돼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손발로 일상생활에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라는 문구가 기억나네요.

[이화진] 3년을 경험해보니까 서비스의 정착은 환자들의 인식변화와 그 변화를 위해 의료진들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케이스 별로 내부 지침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그것에 맞춰 환자를 대하다 보면 먼저 서비스의 취지를 이해하는 분이 생겨나요. 그 이후에는 그 한 분으로 인해 병동 분위기가 바뀝니다.

[기자] 열쇠는 환자에게 있다는 말인가요?

[이화진] 진심어린 소통이죠. 통합서비스 이전에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의학적으로만 다가갔다면 지금은 환자와의 접촉이 많아지다 보니까 심리적 간호도 중요하거든요. 결국 환자와의 총체적인 교감이 없으면 환자도 힘들고 간호사도 힘들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환자의 개인사까지 알게 됨으로써 마음을 위로하고 정서적 지지를 보내야 합니다.

■ 키워드 - 기쁨 그리고 슬픔

[배혜림] 수술실에만 계속 있다 보니까 수술 후에 환자들과 접촉할 일이 적은데 퇴원 할 때 꼭 잊지 않고 수술실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전에 손 잡아줬던 것을 고맙다고 하는 분들, 환자 가족들까지 와서 감사 인사 하는 경우 등 작은 감동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 같아요.

[권은영] 보람은 일을 통해 느끼기도 하지만 가족들 때문에 얻는 부분도 큰 것 같아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갔을 때 아이들이 ‘오늘은 누구 치료해줬어요? 엄마가 간호사여서 너무 자랑스럽다’는 등의 말을 할 때면 ‘간호사 하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하죠.

[강영윤] 간호사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고, 간호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을 경험하게 될 때 뿌듯합니다.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간단한 처치는 물론 응급상황이 발생 했을 때 대처 했던 경험들을 돌이켜 보면 제가 간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이죠.

[서광진] 한번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던 아이가 중환자실로 오게 됐는데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망하게 됐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나가면서 ‘죽어서야 너를 안아보는구나’라고 했던 말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되니까 더욱 그 말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 키워드 - 후배들에게

[정종욱] 의지를 다져라! 간호사 세계에서는 남자로서 유리한 면 보다 불리한 면이 많은 만큼 스스로가 남자간호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반복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미경] 당당해져라! 신세대 간호사들은 직설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들은 칭찬해주고 싶어요. 제가 신규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지만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더라고요.

[권은영]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택하라! 때로는 보수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빅5 병원 중 한곳에서 저희 병원으로 온 간호사 한 분이 전에 다니던 병원에 비해 너무 가족 같은 분위기라며 놀라하더군요.

[조선미] 존재감을 찾고 강해져라! 아무리 좋은 병원에서 일을 해도 스스로 존재감이 없다고 느끼면 버티기 힘듭니다. 내 존재감을 찾을 수 있는 곳, 높일 수 있는 것은 무언인지 생각하고 일자리를 선택하길. 그리고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강해져야 합니다.

[서광진] 한계를 극복하고 장점을 살려라! 여자간호사가 3개월이면 습득하는 일도 남자간호사는 1년이 걸려도 습득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차이를 극복하려면 노력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보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이화진] 간호의 의미가 바뀐 것에 명심하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때문에 진짜 전인간호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과거 선배들은 술기만 가지고 간호를 했다면 이제 후배들은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을 활용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오히려 더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강영윤] 아는 만큼 보인다! 모든 간호의 기초이자 기본은 공부입니다. 신규 때는 당연히 미숙하고 힘들죠.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겪는 일종의 성장통이니 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공부는 필수입니다. 대학 때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배혜림] 쉽게 생각하지 마라! 취업난시대에 전문직으로 떠오르는 간호사이기도 하지만 이직률도 높죠. 이 병원 말고도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나를 필요로 하니까 스스로 나태해지는 것은 아닌지 항상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천직이 간호사인 8인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다시 태어나도 간호사를 직업으로 선택할 건가요?”

2명을 제외한 6명은 “아니요. 이번 생에 간호사 해봤으니 다음 생에는 다른 것 해야겠죠?”라며 웃으며 대답했고 토크는 훈훈하게(?)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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