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수가 결정체계와 개선방향
- 손영래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수가 체계는 행위별 수가체계에 기반하고 있다. 의료행위는 상대가치점수와 환산지수로 구성되어 있고, 약제․치료재료는 상한금액 내의 실거래가를 상환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2012년 본인부담금을 포함한 요양급여비는 48.2조이며, 이중 의료행위가 33.2조(69%), 의약품비용 13.1조(27%), 치료재료 2.1조(4%)로 구분된다.

의료행위 수가의 구성에 있어 상대가치점수는 개별 의료행위에 소요되는 투입가치를 상대적으로 비교화하여 점수화한 점수체계이며, 이 점수에 점수당 가격인 환산지수를 곱한 금액이 의료행위의 수가가 된다. 예를 들어, 의원급 초진 진찰료는 188.11점, 후두농양절개술은 899.52점이며 이 점수에 2013년 환산지수 의원급 점당 72.2원, 병원급 점당 68.2원을 곱한 13,582원, 61,347원이 각각의 의료수가가 된다.

상대가치점수의 결정과정은 전문가 중심의 전문위원회인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를 거쳐, 건강보험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결정하고 있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건강보험의 급여 영역으로 결정될 때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에서 기존의 다른 의료행위와 비교한 상대적 투입가치를 비교하여 점수를 산출하고, 이 결과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함으로써 결정되는 것이다.

환산지수는 매년 건강보험공단과 의료공급자간의 계약에 의거하여 결정되고 있으며, 양자간의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 최종적으로는 건정심에서 결정된다. 이외 의약품과 치료재료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로 편입될 때 각각의 전문평가위원회에서 상한금액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건정심에서 의결함으로써 결정하고 있다.

◇ 의료수가체계의 문제점

의료수가체계의 문제점은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겠으나, 현재 우리 의료체계에서 가장 큰 모순을 야기하는 문제는 상대가치점수에 있어 의료행위간의 불균형이 존재하여 행위간의 보상수준이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수가 설계시 장비나 재료 등 물적 비용은 잘 반영되는 반면, 노동력 등 인적 비용은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추측된다. 물적 비용은 구매내역 등 객관적 자료 확보가 용이하나 인적 비용에 대해서는 객관적 검증이 어려운 특성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균형의 결과로 고가의 장비나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행위의 상대가치점수는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고, 노동력이 집중되는 의료행위의 상대가치점수는 낮게 형성되는 왜곡이 야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상대가치점수 개편을 위한 기초연구로서 2012년 의료기관 회계조사를 실시한 결과, 진찰료, 입원료 등 기본진료료의 보상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이외의 의료행위를 5개 유형으로 분류할 때 수술, 처치, 기능검사 분야의 보상수준은 낮은 반면, 영상, 진단 검사 분야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물적 비용이 인적 비용에 비해 높게 보상되는 수가 설계과정의 문제구조와 부합되는 결과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궁극적으로는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왜곡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거리이다. 의료공급자로서는 진찰과 입원 같은 기본진료보다는 여러 의료행위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수익에 유리하며, 이러한 의료행위 중에서도 수술, 처치보다는 영상, 진단검사를 많이 할수록 수익 향상에 더 유리한 수가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가 환경은 기본진료보다 의료행위량 증가에 의존하는 의료공급자의 진료경향을 유도하며, 고가장비를 활용한 진단·영상 검사의 과도한 증가, 노동집약적인 수술을 주로 하는 외과분야의 침체와 고가의 기기나 재료를 활용한 수술 증가 등 의료서비스 왜곡이 야기될 위험성이 크다. 실제로 우리 의료체계는 이러한 문제 징후들이 나타나고 악화되고 있어,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수가체계의 또 다른 문제는 수가의 전반적인 보상수준을 결정하는 환산지수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며, 주요 이해관계자간에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이하며 상호간의 신뢰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의료공급자들은 현재의 수가 수준이 너무 낮아 정상적인 의료 제공이 어렵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반면, 시민단체 등 가입자들은 우리나라의 의사 소득이 낮지 않다고 반박하는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수가 수준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의 결론은 연구자에 따라 편차가 나타나며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은 건강보험 급여권의 보상수준은 낮은 반면, 비급여의 가격과 빈도 등 보상수준은 과도하여 비급여를 통해 수익을 보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급여권 내에서도 수익이 높은 의료행위의 양적 과잉이 나타나며 수익을 보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익구조 왜곡은 건강보험 급여권 내에서 불필요한 의료행위의 양적 증가가 야기됨과 동시에, 비급여의 양적 과잉과 높은 가격이 유도된다는 점에서 의료공급자와 환자, 모두에게 불합리하고 불리한 의료 환경을 조성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자는 급여권 수가 수준은 상향 조정하되, 불필요한 증가 양상을 보이는 의료행위의 빈도를 줄이고, 이와 함께 비급여의 가격과 제공량을 감소시키는 변화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개선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개선이 어려운 이유는 공급자와 시민사회, 정부 상호간의 신뢰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행과정에 대해 공급자는 충분한 수가 보상이 되지 않는 경우를 걱정하며, 시민단체 등은 불필요한 의료제공의 감소, 비급여의 가격과 제공량 감소 등이 제대로 달성될 것인지 효과를 우려한다. 또한 양자 모두 정부가 공정한 중재자로서 공평한 개선을 추진할 것인지 신뢰가 미흡하다. 이에 따라, 문제는 모두 인식하고 있음에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효과적인 개선방법은 합의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포괄수가제 등 지불체계 개편방안이 이러한 개선방법의 일환으로 제시된 바 있으나, 이의 이행을 둘러싸고 격렬한 갈등이 나타났던 것도 이러한 신뢰기반 미흡을 반증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 의료수가체계 개선방향

수가체계의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상대가치점수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개선방향은 명료하다. 기본진료료와 수술, 처치, 기능검사 등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의료 부문을 상향 조정하되, 검체검사나 영상검사와 같이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의료 부문을 하향 조정하는 것이 기본방향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의 실제 이행은 쉽지 않다. 수가 조정은 엄청난 재정의 분배구조를 재조정하는 과정이며, 의료기관 종별로, 진료과목별로 의료공급자 내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공급자간 합의가 달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공급자들은 현재의 낮은 수가수준을 개선하지 않고 재정 중립이라는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분배구조를 조정하는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에, 의료계 내부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반발과 갈등으로 인하여 제1차 상대가치점수 조정(2008~2012년 5년간 진행)은 진료과목별 총 재정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과목내의 상대가치 조정만 추진한 바 있으며, 결과적으로 수가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미비하였다.

이렇듯 어려운 과정이기는 하나, 수가 불균형의 조정은 우리 의료체계의 왜곡을 해소하고 건전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루기 힘든 과제이다. 따라서 서로간에 조금씩 양보하고 상호 상생할 수 있는 최적의 이행방안을 찾아내는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3월초 개최된 건정심에서 수가 조정을 위한 기본방향을 보고하고 건정심 산하에 의료공급자, 가입자, 학계 등이 참여하는 상대가치기획단을 4월까지 구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상대가치기획단 내의 논의와 의료계와 합의를 통해 수가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제2차 상대가치점수 조정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금번 상대가치점수 조정은 상대가치점수 이외에 다양한 가산제도를 함께 개선하여 수가 조정에 따른 재원의 배분을 유연하게 재구성하도록 병행할 계획이다. 가산제도 정비와 상대가치점수 조정을 함께 추진한다면 수가 재조정 작업이 좀더 원활하게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공급자들이 제기하는 낮은 수가 수준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비급여의 감소 또는 과잉 경향의 의료공급을 적정화하는 개선과 병행되어 추진될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에만 비급여보다 급여 중심의 의료공급이 가능하고, 비효율적인 양적 팽창보다 적정 진료가 제공되는 건전한 의료환경이 달성될 것이다. 또한 수가인상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초래되는 의료비와 보험료 부담 증가를 비급여의 감소 또는 불필요한 의료의 감소로 인한 의료비 부담 완화 효과로 상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개선은 이해당사자들간의 상호 신뢰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간의 신뢰 수준은 높지 않으며, 이 점이 총체적인 개선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작은 부분부터라도 서로간에 윈-윈할 수 있는 개선을 달성하고 이러한 성공의 경험과 효과를 축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경험이 쌓여갈수록 공급자, 가입자, 정부 간의 신뢰는 향상될 것이고, 좀더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개선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개혁의 첫 번째 단초로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개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개선방안은 금년 2월에 발표한 바 있으며, 수가 적정화와 비급여 감소라는 측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방향은 비급여를 적극적으로 해소 또는 급여화하되, 이로 인한 의료계의 손실분은 100% 급여권의 수가로 이전하여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손실 보상은 단지 의료계의 손해를 방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비급여 위주의 기형적 수익구조를 급여권 중심의 건전한 수익구조로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를 개선하자는 의미이다.

또한 수가 편입의 세부적인 방안도 가급적 현행 수가체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수립하고 있다. 병실료 등 기본진료료, 중환자실 등 특수병상, 고도 수술·처치 등 의료 분야, 환자의 안전, 병원의 질적 수준 등을 감안한 질적 보상비용 등이 그 세부적인 수가 편입방안이다. 적절히 추진되는 경우 비급여는 감소하되 급여권의 수가 수준이 상향화되는 구조적 개선 효과와 함께, 수가 불균형이 완화되고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질적 수준이 제고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개선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비급여 해소와 수가 적정화가 병행 추진되는 좋은 모범사례가 이해당사자들간의 공동 경험으로 내재화될 것이며, 상호 상생하는 협력과 신뢰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맺으며

건강보험의 수가체계는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 제정 이후 10여년이 넘도록 현재까지 근원적인 구조가 변하지 않고 미시적인 개선만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3대 비급여 해소, 상대가치점수 재편 등 수가체계의 거대한 변화가 예정되어 있으며, 우리 건강보험과 의료체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하여 이러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향후 2∼3년간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될 것이며, 좋은 방향으로의 훌륭한 개선이 달성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수가체계 개선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없으며, 의료공급자, 가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와 협력이 동반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향후의 수가체계 개선과정에 있어 모든 이해관계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공동의 노력이 동반되기를 기대하며, 미래를 향해 한층 더 발전한 건강보험과 의료체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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